지도자 만들기: Ask yourself: “What would I like the impact of this course to be on students 2-3 years after the course is over? Wjhat would distinguish students who have taken the course from students who have not?”(Dr. Shelly Cunningham)
학교에서 올해 교수 세미나가 있었다. 올해에는 탈벗의 Dr. Shelly Cunningham 이라는 분을 모시고 “Integrated Course Syllabus Design”이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가졌다. 이 강의의 목적은 Syllabus 작성에 관한 것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학 과목의 Goals/ Outcomes를 정하는 것과 그것을 어떻게 Assessment할 것인가에 관한 강의였다. 요사이 미국 교육국에서 Assessment를 무척 강조 하고 있다. 그래서 인가 단체에서는 각 학교들로 하여금 학생들에게 실제적으로 어떤 변화를 목적하고 있으면 그것을 성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Assessment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학교도 인가 과정에서 이런 면에서 노력을 할 필요를 느끼던 차에 이번 세미나를 준비하였고 다음 주에는 학과목 수준이 아닌 프로그램별 Goals/Outcomes와 Assessment에 관하여 또 강의를 들을 예정이다. 나는 교수로써 늘 더 좋은 강의를 하기위하여 공부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사실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할 때에 주로 앞으로 강의하게 될 내용에 관해서는 공부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강의를 할 것인가에 관하여서는 별로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실력은 좋은 교수인데 강의는 별로인 교수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박사 과정 중에 지도 교수가 교수법에 관하여 연구하고 노력 하면서 우리 제자들에게 교수법에 관하여 소그룹으로 또 실제적으로 많은 멘토링을 받아서 최소한 그것의 필요성을 느끼고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클린톤 교수님의 교수법 자료들을 다시 읽으면서 특히 Syallbus 작성에 관하여 읽고 있었는데 이번 강의가 보다 근본적인 요소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강의 Syllabus를 작성하는 것이 전체 강의에서 너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 중에서도 강의의 핵심 목적을 결과(Outcomes)의 관점에서 기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오늘 세미나에서 Outcomes을 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를 다섯가지로 말해주었다. 그 다섯가지를 적어보면,
* Use action verbs that specify definite, observable behaviors.
* Describe student behaviors rather than teacher behaviors.
* Describe a learning outcomes rather than a learning process.
* Focus on end-of-instruction behavior Rather than subject matter coverage.
* Use one or more measure for each objective.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 강의를 통하여 학생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기를 원하는가의 관점에서 목표를 진술하는데 특히 강의를 마치고 2-3년 이후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당장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보다 깊이있고 근본적인 변화에 촞점을 맞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도자 만들기: “모든 위대한 지도자는 절룩 걸으며 걸었다” (클린톤 교수의 Sovereign Minidset중에서 인용)
지난 달에는 우리 교회에서 김용기 선교사님을 모시고 말씀을 선교 보고를 들었다. 태권도 8단이시고 중동 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이시다. 그 분이 처음 선교를 나갈 때에 선교를 나가기 바로 전에 처가 집에서 장인 어른과 처남이 교통 사고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땅끝까지 선교하는 마음으로 지금 떠나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힘을 주시기는 커녕 도리어 사모님의 가정이 이런 큰 환란을 당한 것이었다.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사역을 포기하지 않고 선교지로 나가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또한 그 선교사님은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는 동안의 그의 첫번째 자녀를 두 살 때에 잃었다. 그로 인하여 사모님의 크게 힘들어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하고 좌절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낙심하지 않고 선교 사역을 이어 나아가서 지금 활발하게 사역을 하고 계시다. 물론 하나님께서 나중에 자녀들을 더욱 허락하셔서 지금은 단란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그 가슴 속에는 아직도 잃었던 첫번째 자녀에 대한 사랑의 아픔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나도 그런 상황 속에서 그렇게 사역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또한 지난 달에는 갑자가 놀라운 소식을 접하였다. 우리 학교를 졸업하신 한 여자 분이 그 남편과 결혼하고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자녀가 생겨서 아이의 돌 잔치도 하고 또 남편은 작은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남편이 소천하였다. 그래서 30대 중반의 이 여성분이 하루 아침에 홀로 된 것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아직도 정신을 잘 차리지 못하고 장례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너무 안타까왔다. 이날 장례식에 우리 학교에서 일하는 여자 전도사님 두 분과 함께 차를 타고 다녀왔는데 오는 차에서 한 분이 자신도 20대 후반에 아들 하나 낳고 남편이 교통사고로 하루 아침에 갑자기 소천하여 참 힘든 삶을 살았고 하면서 아무도 그 남편을 갑자기 잃은 여성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안타까와하였다.
우리가 인생 길 가운데 이런 어려움들을 당한다. 때로는 죽음의 위기와 질병으로, 때로는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것으로, 때로는 실업이나 실패로, 때로는 남이 알지 못하는 관계의 갈등이나 내면적인 어려움으로 인생의 광야와 같은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클린톤 교수는 이런 경험들을 하나님께서 영적 지도자들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하면서 Deep Processing이라고 이름지었다. 이런 어려움을 만나면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한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돌아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때에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그의 주권하에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고 믿고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남이 알건 모르건 이런 인생의 광야와 깊이 있는 고난의 시간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런 경험들을 통하여 그들의 하나님께 더욱 매달리고 하나님으로 만족함이 하나의 말의 고백이 아니라 실제 삶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그 경험을 한 것에서 끝나지 않고 정말로 인생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사역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이해하고 위로하려고 해도 정말로 힘든 경험은 겪어 보지 않는 사람들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경험을 한 사람들이야 말고 그런 경험 가운데 있는 이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섬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위에 인용한 말 “ 모든 지도자는 (어떤 의미로던지) 절뚝거리며 걷는다”이 맞는 것이다. 결국 고난은 힘들지만 진정한 영성으로 진정한 지도력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지도자 만들기: “나이가 50이 되기 전에는 책을 쓰지 마세요.”(어떤 목사님의 말)
그 전에 나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멘터링을 해주신 분이 영향력 있는 책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된 탁월한 연구던지 아니면 자신의 삶 속에서의 실제 경험한 것에서 나오는 체험적인 글이라고 하셨다. 아마 앞에서 인용한 말을 하신 목사님의 말씀은 두 번째 종류의 책을 언급하시는 것 같다. 책을 쓰되 그냥 말로 써진 것보다는 삶을 통하여 써진 책을 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50살은 되어야 삶과 사역 경험에서 자신의 것을 쓸 수 있다는 말씀인 것 같다.
학문을 하여도 머리 속에 남아있는 학문이 있고 몸으로 표현된 학문이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학문이 머리 속에 진리로 남지 않고 그것을 몸으로 삶 속에서 실천하여 진정한 의미로 자기의 것이 된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글로 표현하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경험된 진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으로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다.
“나이가 50이 되기 전에는 글(책)을 쓰지 마세요”라는 말이 젊은 이들에게 글을 쓰려고 서두루지 말고 먼저 진리를 인생 속에서 살고 체험하라는 말이지만 지금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들린다. 이제 나도 앞으로 곧 50세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나에게 들린다. 아직까지도 진리가 머리 속에나 멤도는 그런 학자나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고 체험과 경험 속에서 나온 육화된 나의 진리들을 쏟아놓아야 할 권리와 동시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이 50이 되었으면 “글(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직까지도 책으로 쓸만한 육화된 진리가 없다면 안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지금 내가하는 말들이 억지인가?